요즘 기업 주총장서 가장 목소리 크다는 이 큰손
요즘 기업 주총장서 가장 목소리 크다는 이 큰손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작년에 여러 자본시장 현안에 개입했다.
최근 사례는 한미약품의 경영권 분쟁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6~7% 보유했으며,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열세에 놓였던
연초부터 이들에 대한 지지를 이어왔다.
마침내 작년 12월 말 국민연금 지지를 등에 업은 4인 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라데팡스)의 승리로 분쟁이 마무리됐다.
만약 국민연금이 반대편에 섰다면 모녀 측이 조기에 동력을 상실할 터였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합병·분할 안건도 최초 안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수책위마저 반대할 기류가 나오자 두산 측은 수정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KT에 이어 2024년에는 포스코에서 수책위 의결을 거쳐 새로운 수장(최고경영자·CEO)이 선임됐다.
이처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주주총회 안건에는 기업 지배구조, 오너 일가의 가족사 등 흥미 위주의 해석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수책위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원칙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다.
수책위 관계자는 “이사 선임이나 계열사 분할·합병과 같은 안건들이 주로 관심을 받다 보니
수책위가 기업 지배구조라는 조금 더 거창한 주제를 논하는 곳이란 인식이 있다”면서
“연금 수익률을 해친다면 아무리 좋은 지배구조 개편안도 수책위 논의에서 지지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이 투자·주주활동 등에 ESG(환경·책임·투명경영)를 반영하는 것도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장기 수익률까지 개선하는 게 목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계기를 감안해도 수책위에서 기금 수익률 이외의 가치를 앞세울 여지는 크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가 감독기관의 실패,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반성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작됐다.
매일경제신문이 집계한 결과, 지난해 수책위가 반대 의견을 낸 안건 비중은 전체의 32.5%였는데,
이는 전년도 22%에서 10%포인트 넘게 증가한 수치다. 전년도에 비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대한 반대가 크게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수책위로 회부되는 안건이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한 만큼 기업들도 점진적으로 주주활동에 적응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가 점차 국제기준에 맞춰 변화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존 오너 일가와 투자자본이 갈등을 빚는 일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재벌 3세 체제로 접어들며 오너 일가 지분이 희석되는 것도 재벌가 내부 갈등이나 외부 공격이 늘어날 요인”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 한 전임 수책위원은 “각종 사모펀드·행동주의 투자자들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경영권을 위협할 일도 없고,
사회적인 감시도 많이 받는 기관”이라며 “실제로 기존 경영진에 우호적인 판단을 내릴 때도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합리적인 주주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해석했다.
다만 주주총회를 여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책위로 안건이 회부되는 것이 당장은 부담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